[특집/지방자치 30년 역사 후~]지방자치 30년,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김철휘 한국공공기관연구원 부원장

 

1989년 12월15일이었다. 청와대에서 당시 정국의 현안을 풀기 위한 4당 총재회담이 열렸다. 참석자는 노태우 대통령,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였다. 그때는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하고 있었다. 7시간에 걸친 회담을 마치고 자정이 넘은 12월16일 자로 공동발표문이 나왔다.

그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실 행정관이었던 나는 저녁 내내 그 합의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사 중계차가 청와대 비서실 앞마당에 들어와서 합의문을 기다릴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대단했다. 그날 합의한 11개 항의 내용 가운데 바로 지방자치에 관한 부분이 있었다. 일곱 번째 항목에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등 야당이 주장하는 법률의 개정 문제는 2월 임시국회를 열어 다루기로 했다. “특히 지방자치제에 관한 법률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지방자치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6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미루어지던 지방자치가 중단된 지 30년 만에 부활하는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뤄진 정치적 대타협의 산물이었다. 1991년에 기초의회가 출범하고 1995년에 민선 단체장이 취임하면서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방자치, 대타협으로 부활하다 
청와대 회담의 당사자였던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총재는 그 이후 대통령으로서 이 과정을 이끌게 되
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군·구부터 주민이 선출한 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확고한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저는 시·군·구의회가 주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활동을 펼쳐나감으로써 민주주의를 굳건히 뿌리내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국민은 새로 출범하는 시·군·구 의회가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복지를 실현하는 진정한 대의기구가 되어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의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주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자치행정을 구현하고 지역공동체의 화합을 다져 민주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참여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노태우 대통령, 시군구의회 개원 축하 메시지1991. 04. 15. )


광역 및 기초 단체장과 의원을 함께 뽑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전면적인 지방자치를 실시하게 됩니다. (중략) 지방자치는 실시 자체보다도 그 본연의 뜻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발전을 이룩하는 ‘주민자치’입니다. 지방자치는 주민 개개인의 건설적 에너지가 지역발전으로 수렴되고, 나아가서 국가발전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참뜻이 있습니다. 지방자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의 참된 일꾼을 뽑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방자치에서는 주민 자신이 지역경영의 주체가 되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도 함께 져야만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지방선거 실시에 즈음한 특별담화문 1995. 05. 30.)


“민주주의는 국회와 지방자치, 이 두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지방자치를 하지 않는 민주주의는민주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중략)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화 시대에 알맞게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지방자치를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내 고장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잘 살려야 하겠습니다. (중략) 지방자치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중략) 내 지역만 좋으면 다른 지역은 상관없다는 생각과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단도 불사한다는 태도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크게 보면 나라 발전을 저해하지만 작게는 각 지역의 진정한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지역이 지역이기주의를 주장할 때 어떻게 안전하고 성공적인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대화와 더불어 번영하는 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제1회 지방자치단체 개혁박람회 참석 인사 초청 오찬 2000. 10. 24.)

 

지방자치, 우리의 일상(日常)이 되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활한 지방자치는 이제 완전한 궤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은 우리 지방자치를 노태우 대통령의 준비기,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부활기, 노무현 대통령의 도약기, 이명박 대통령의 내실기로 분석하고 있다. 지방자치는 적어도 제도적으로 보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30년 전 지방자치를 언제부터 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권이 정쟁을 벌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성숙기에 접어든 지방자치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것은 지방자치가 지역의 발전을 제대로 이끌고 있는가? 주민의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키고 있는가? 중앙과 지방은 얼마나 상생하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을 보면 지방은 갑이 아니라 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구절벽에 따라 없어질 지방자치단체가 나온다는 걱정까지 있다.
이제 지나온 30년의 지방자치를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을 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0년 전 지방자치가 부활했을 때의 기대와 설렘, 그 초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방자치, 새로운 30년을 열어가자
지방자치의 미래를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다. 제도적·정치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혁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한 번 더 가다듬는 일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첫째는 열린 자치가 되어야 한다 자치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만의 자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성화가 폐쇄화로 될 수는 없다. 개성 있게 발전하는 것과 닫혀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열려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열려 있어야 혁신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하고 협력해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지자체 초창기에 지역이기주의를 우려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화합의 자치가 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를 하면서 우리는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선거를 치르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선거가 편 가르기의 시작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을마다 선거 때문에 이웃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선거는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지 진영을 나누어 전쟁을 치르는 일이 아니다. 화합의 시작은 소통이다. 그 소통은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데 있다.


셋째는 미래의 자치가 되어야 한다 30년을 한 세대라고 한다. 이제 지방자치의 또 다른 한 세대가 시작되었다. 지방자치를 시작할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구문제일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은 어떤 모습이 될까? 임기 4년이
아니라 그다음 미래를 생각하는 자치가 되면 좋겠다. 자치의 주인공은 단체장도 의원도 아니다. 그곳에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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